<2008년 8월> 이공계와 미디어 교육

 

‘버스요? 한번 탈 때 한 70원 하나요?’ 라디오의 생방송 토론 프로그램에 출연한 한 국회의원의 발언이 화제다. 버스요금이 100원을 넘어선 것이 1980년대 중반쯤으로 기억한다. 500원 정도라고 했어도 그냥 웃으면서 넘어가겠는데, 이건 심각하다. 4인 가족의 한달 생계비로 70만원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버스요금을 카드로 내게 되면서 처음에는 적잖이 신경이 쓰이기도 했다. 요금이 두 번 빠지는 건 아는지, 환승할인은 되는 건지, 왜 출근 때랑 퇴근 때랑 요금이 다른 지 등등. 간혹 운전기사와 승객 사이에 실랑이가 일기도 했다. 이런 서민들 입장에서 ‘버스요금 70원’이라는 대답은 기가 찰 일이다. 10년 동안 버스 한 번 안탔다는 말인가?

이 발언이 논란거리가 되고, 문제가 되는 것은 그 말을 한 사람이 ‘국회의원’이기 때문이다. 민의를 대변할 책임과 의무가 지워진 사람이라는 말이다. 사인(私人)으로서 한국 서울의 버스요금에 대한 무지는 에피소드는 될지언정 비난의 대상은 아니다.

우리는 간혹 내가 알고 있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어야 한다는 착각에 빠지곤 한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을 다른 사람이 모르면 ‘어떻게 그것도 모를 수 있지! 정말 상식조차 없는 사람이구나’ 라고 생각하고, 내가 모르는 것을 다른 사람이 알고 있으면 ‘참 쓸데없는 것까지 많이도 알고 있구나’ 하고 빈정댄다. 사람들이 알아야 할 ‘상식’의 수준과 범위를 오직 ‘내가 아는 것까지’ 만으로 한정 짓는다.

내가 아는 것들을 모르고 있는 사람들이라고 해서 생활에 큰 지장을 받거나 삶에 심각한 장애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런 사람들의 소득수준이나 교육정도가 더 낮다는 어떤 설득력 있는 근거도 없다. 아는 사람은 모르는 사람의 무지(無知)가 너무나도 안타깝겠지만, 그 무지를 깨우쳐준다고 해서 늘 환대를 받는 것은 아니다. 모르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귀찮고 쓸데없는 것으로 여겨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우연히 어느 심포지엄에서 듣게 된 이야기가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과학대중화 분야에서 상당한 활동을 하신 것으로 소개된 과학자 한 분이 ‘국민들이 과학을 너무 모른다. 예컨대, 분자가 원자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조차 모르는 사람들도 있다. 언론이 이러한 무지를 깨뜨리는 데 노력해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정말 그렇다. 중·고등학교 시절에 배운 아주 기초적인 과학지식을 잊고 산다. 우리나라만 그런 것도 아니다. 미국의 과학식자율(scientific literacy) 조사에서도 중학교 수준의 단편적 과학지식에 대한 정답률이 20~30%를 밑돈다.

그러나 일면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는 그의 주장은 일반인의 커뮤니케이션 현상에 대한 이해의 부족을 여실히 보여준다. 무엇보다도 일반 국민들은 그러한 기초적 과학지식을 아는 것을 절실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언론매체가 아무리 훌륭한 과학지식을 제공한다고 해도 거기에 주목하거나 이해에 도달할 가능성이 낮다.

조금 비현실적인 가정을 해보자. 지상파 방송을 모두 과학프로그램으로 채운다면 어떻게 될까? 몇몇 과학자나 정책입안자들은 정말 이렇게 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텔레비전을 켤 때마다 이렇게 과학프로그램이 넘쳐난다고 해서, 국민들의 과학지식이 단시간에 크게 증가하고 이공계 기피가 사라질까? 몇 년 후에는 우리나라도 여러 명의 노벨상 후보를 갖게 될까?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다. 대신 사람들은 더 이상 텔레비전을 켜지 않게 될 것이다. 인터넷을 하거나 자신들의 욕구를 충족시켜 줄 다른 매체를 찾아 나설 것이다. 비디오나 DVD 대여점이 다시 성업할 지도 모른다. 무지한 국민들에게 과학지식을 가르쳐야 한다는 식의 일방적 정보전달의 한계는 다양한 경험적 사례를 통해 나타났다. 중요하고 획기적인 과학지식이라고 강조한다고 해서 일반인들이 관심을 갖는 것이 아니다. 단지 그것은 과학자들의 내부 세계에서나 통용될 뿐이다.

무조건 던져주는 것이 아니라 정교한 접근방법이 필요하다. 일반인 각 개인의 삶과 어떻게 연관되는지를 일러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수용자 개인이 관여(engagement)가 발생했을 때, 주목(attention)으로 연결되고 이해(understanding)에 이를 가능성도 높아진다. 물론, 이것은 누구보다도 언론인의 과제다. 같은 토픽을 다루더라도 관여의 가능성과 정도를 높이기 위해 어떻게 이야기를 구성하고 언제 방영할 것인지를 결정해야 한다.

그러나 과학자에게도 이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 언론매체가 제공하는 과학지식과 정보는 과학자로부터 출발할 수밖에 없다. 지식과 정보를 생산해낸 과학자들이야말로 관여를 유도할 좋은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과학자가 언론인과 언론매체와 관계를 잘 맺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한 국책연구원에서 있었던 일이다. 기자가 과학자에게 전화를 걸어 연구성과에 대한 취재를 요청했다. 과학자의 연구는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이 아니었다. 기자의 질문이 계속되고 보충취재를 요청했다. 과학자는 더 이상 시간을 빼앗길 수 없다고 판단했는지, 연구결과가 게재된 논문을 기자에게 보내는 것으로 추가적인 취재요청에 대응했다.

과학자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연구성과를 가장 잘 정리한 것이 연구논문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러나 논문을 받아든 기자는 몹시 당혹스러웠을 것임에 틀림없다. 전공분야도 아닌 전문저널의 논문을 읽고 이해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할뿐더러 시간의 제약 속에서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상황에서 가장 큰 책임은 연구원의 홍보담당자들에게 있다. 언론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과학자를 직접 기자와 연결시켜 주었기 때문이다. 언론인과 과학자 사이에서 적절히 중개 역할을 하는 것이 과학홍보인의 중요한 역할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이다.

과학자 스스로도 언론매체를 충분히 알고 이해할 필요가 있다. 미디어의 제작 메커니즘을 알고 있다면 불필요한 오해를 줄이고 보다 효과적인 대응이 가능할 것이다. 예컨대, 다수의 과학자들은 언론과의 인터뷰를 대단히 부정적으로 바라본다. 1시간이나 시간을 뺏더니 10초밖에 나오지 않았다거나 자신의 발언이 심각하게 왜곡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인터뷰가 어떤 프로그램을 위한 것인지 알았다면 자신에게 할당될 수 있는 시간은 충분히 예측 가능하다. 만일, 저녁뉴스에 사용될 인터뷰라면 10초 이상 방영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따라서 이 경우 구체적이고 상세한 설명보다는 한 두 문장으로 핵심 내용을 압축할 필요가 있다.

또, 어떤 사회적 이슈에 대해 이런 긍정적 측면도 있고 저런 부정적 측면도 있다는 식의 코멘트는 강의에서는 필요할지 몰라도 인터뷰에서는 피해야 한다. 기자는 분명히 그 둘 가운데 하나만을 편집하여 이용할 것이기 때문이다. 기자는 그 한 편의 입장을 대변해 줄 것을 기대하고 인터뷰를 요청했을 가능성이 크다. 곧, 자신이 분명한 한 편의 입장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면 사회적으로 첨예한 쟁점에 대해서는 인터뷰를 하지 않는 것이 낫다.

이러한 것들을 이제까지는 과학자 개인이 각자 능력껏 경험을 통해서 배웠다. 그러다 보니, 사회활동의 반경이 작을 수밖에 없는 과학자들은 언론에 가장 취약한 집단이 되고 말았다. 이제부터라도 예비과학자 단계에서부터 체계적으로 가르치고 배워야 한다. 뉴스와 방송컨텐츠의 제작 메커니즘과 언론인의 업무수행 과정을 이해해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미디어와 어떻게 소통할 것인지에 대해 생각하고 훈련할 수 있도록 한다면 좋을 것이다. 이런 교육이 낯선 것이 아니다. 필자는 수년 전부터 학부에서 ‘과학커뮤니케이션’이라는 과목을 강의하고 있다. 이 강의에는 많은 이공계 학생들이 참여한다. 호기심 반 두려움 반으로 신청한 학생들이 학기가 진행될수록 좋아하고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매일 접하는 언론매체들을 새롭게 심층적으로 이해하게 될 뿐 아니라, 이제까지 경험하지 못한 커뮤니케이션 훈련을 경험하기 때문이다. 모든 이공계 대학생들에게 이런 기회를 마련해 주어야 한다. [끝]

by 전망좋은방 | 2008/08/07 17:53 | <과학과기술> | 트랙백(1) | 덧글(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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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光雨 A.K.A em2c at 2008/08/08 09:30

제목 : 상식의 수준은 내가 아는 것이 기준
전 문 입 니 다 . 우리는 간혹 내가 알고 있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어야 한다는 착각에 빠지곤 한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을 다른 사람이 모르면 ‘어떻게 그것도 모를 수 있지! 정말 상식조차 없는 사람이구나’ 라고 생각하고, 내가 모르는 것을 다른 사람이 알고 있으면 ‘참 쓸데없는 것까지 많이도 알고 있구나’ 하고 빈정댄다. 사람들이 알아야 할 ‘상식’의 수준과 범위를 오직 ‘내가 아는 것까지......more

Commented by 본명光雨임 at 2008/08/08 09:40
트랙백 해요^^
Commented by yami at 2008/08/08 13:59
80년생인데, 국민학교 1학년때 버스표가 60원이었습니다.(오렌지색)
몇 년 후 70원(보라색)이 되었고...
100원을 넘은 건 좀 더 후일것 같네요.
Commented by sc0314 at 2008/08/25 00:53
- 지적 고맙습니다. ^^
Commented by 깐죽깐돌이 at 2008/08/08 14:53
트랙백합니다
Commented at 2008/08/09 03:58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키세츠 at 2008/08/09 10:26
사람들이 알아야 할 ‘상식’의 수준과 범위를 오직 ‘내가 아는 것까지’ 만으로 한정 짓는다.

.....

사회에서의 소통의 부재의 이유를 이보다 더 명쾌하게 정의할 수는 없을 듯 하군요. 잘 읽고 갑니다.
Commented by 예영 at 2008/08/09 12:03
국회의원 이야기는 심각해보입니다. 국회의원님들 생활이 버스와 아무 상관이 없다고 해도 말이지요..........

사람들은 흔히 자기 자신을 기준으로 세상을 판단하거든요. 그래서 '주관'과 '객관'이란 말이 따로 있는 거겠지요.

그런데, 우리나라 과학계에서는 과학자가 미디어에 노출되는 것에 대해서 어떤 인식들을 갖고 있을까요? 긍정적일까요 부정적일까요???
Commented by 맹꽁 at 2008/08/09 14:30
일본에선 과학 전문 홍보요원을 양성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최근 뉴스를 통해 알았습니다. 일반인과 과학기술자들 사이의 가교 역할을 할 거라고 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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