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2월> 언론의 권위와 유사과학

 

   아이들 사이의 논쟁은 쉽게 끝나지 않는다. 상대방의 주장을 인정하고 한쪽이 수긍하게 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무작정 끝까지 우기고 본다. 주위의 구경꾼 아이들도 누구의 말이 맞는지 판단이 쉽지 않다. 경험도 없고 지식과 정보도 부족한 탓이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도 한참 듣다 보면 그럴 듯하게 들리기도 한다. 결국 논쟁은 끝까지 물러서지 않는 고집이나 무력의 위세에 의해 마무리되기 마련이다.

   이런 아이들의 논쟁을 깔끔하게 정리해 주는 한 마디가 있었다. ‘그거 텔레비전에서 봤어’ 또는 ‘그거 신문에 났어’ 하는 한 마디다. 이 말이면 상대방은 ‘그래?’ 하며 확인을 하고는 이내 꼬리를 내리고 만다. 거기에다 누군가 옆에서 ‘그거 나도 봤어’ 하는 추임새가 곁들여지고 나면 상황 종료다. 텔레비전이나 신문에 나온 이야기는 모두 사실이고 진실임을 누구도 의심하지 않았던 것이다.

   텔레비전이나 신문보다 인터넷을 더 가까이하는 요즘 아이들에게는 참으로 순진한 이야기로 들릴지 모르겠다. 텔레비전이나 신문에는 나오지 않는, 더 그럴듯하고 더 상세한 이야기들이 숨어있는 곳이 인터넷이니 말이다. 하지만, 어린 시절, 우리들에게 텔레비전이나 신문은 선생님의 말씀보다도 거역하기 힘든 권위의 상징이었다. 이러한 언론의 권위는 제작자와 제작과정에 대한 신뢰로부터 연유한다. 그 신뢰는 대개 다음의 세 가지로 갈라볼 수 있다.

   첫째는 뉴스와 기사를 직접 취재하고 제작하는 언론인 개인에 대한 신뢰다. ‘기자’는 다른 직업과 달랐다. 권력을 감시하고 민의를 전달하는 사명을 부여받은 ‘특별한’ 월급쟁이였다. 권력에 굴하지 않고 정론직필하는 ‘지사’였다. 어렵고 힘든 관문을 통과한 능력있고 똑똑한 인재들이 쓴 기사가 거짓일리 없다.

   둘째는 뉴스를 제작하는 언론사에 대한 신뢰다. 기자에서부터 데스크, 편집국장으로 이어지는 단계를 거치면서 하나의 뉴스가 만들어진다. 만에 하나 부정확하거나 거짓인 뉴스라면 이 과정에서 충분히 걸러질 것이다. 역사와 전통을 가진 언론사라면 그간 축적된 노하우가 있을 것이고, 사회 요소요소에 상당한 네트워크도 구축했을 것이다. 그런 언론사가 확인도 안하고 사실이 아닌 뉴스를 내보낼 리 없다.

   셋째는 사회 전반의 시스템에 대한 신뢰다. 텔레비전과 신문의 파급력이나 영향력은 아직도 상당하다. 매스미디어의 속성상 동시에 다수의 사람들에게 메시지가 전달되며, 많은 사람들이 주목하고 있다. 그 가운데에는 대학교수도 있고, 시민단체 간부도 있고, 관련 분야의 공무원도 있을 것이다. 사실과 다르거나 잘못된 내용이 있다면 지적되고 수정될 것이다. 한번이라면 몰라도 반복해서 동일한 내용이 등장한다는 것은 다른 전문가나 관련자들이 그 내용을 인정하거나 적어도 용인한다는 것이다.

   언론인과 언론사, 사회시스템에 대한 신뢰는 언론의 보도내용에 대한 신뢰로 이어졌고, 언론에 대한 일정한 권위를 부여하기에 이르렀다. 일반인들은 텔레비전과 신문 이외에 별다른 정보원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고작해야 친구나 동료, 이웃으로부터 전해 듣는 이야기 정도다. 이런 조건에서 언론은 그들이 신뢰하고 의지할만한 거의 유일한 정보원인 셈이다.

   언론 못지않은 아니 그 이상의 권위를 갖는 것이 ‘과학’이다. 과학의 권위는 과학이라는 지식체계가 갖는 권위에 과학자의 권위가 더하여 만들어진다. 과학은 인간의 합리적이고 이성적 사고의 산물이다. 과학은 곧 체계적이고 논리적인 접근방법을 가리키는 것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과학활동에 의해 제시된 결과를 더 신뢰했으며 일정한 권위를 부여했다.

   또한, 과학자들은 다른 사람들과는 구분되는 특별한 집단이라고 여겼다. 세상의 사사로운 욕심에서 벗어나 순수하게 진리만을 추구하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다. 예컨대, 과학자들은 조금 가난하더라도 돈의 유혹을 뿌리칠 사람들로 여겨졌다. 정치인이나 기업인들과는 달리 과학자들이 거짓말을 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황우석 박사에 대한 기대를 쉽게 포기하지 못했던 것도 바로 이 때문일 것이다. 설마 과학자가 거짓말을 하리라고 생각할 수 없었고, 설마 줄기세포를 만들지 못했으리라고 의심할 수 없었던 것이다. 어쩌면 이 사회에서 과학과 과학자가 갖는 권위의 프리미엄이 황우석 사태를 키운 꼴이 되고 만 것이다.

   이러한 언론의 권위와 과학의 권위가 만났을 때, 그것은 엄청난 파괴력을 갖는다. 그야말로 미다스의 손이 된다. 어떤 이야기이든 사실이 되고 진실이 되고 진리가 된다. 이를 먼저 간파하고 이용해서 재미를 봤던 것이 광고 분야다. 텔레비전이나 신문과 같은 대중매체에 과학적 데이터와 과학자를 내세워 효과를 극대화시킬 수 있었다. 언론의 권위와 과학의 권위를 상품에 대한 신뢰로 연결시킨 것이다.

   DHA, 오존, 은나노, 레티놀, 알칼리 이온수, 아스파라긴산, 해양심층수 등. 일반인들은 이것들의 정체가 무엇인지, 어떻게 작용하고, 어떤 역할을 기대할 수 있는지 잘 알지 못한다.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과학자들이 연구해서 밝혀내고 만든 것이니 좋은 것일거라 여기고, 큰 언론사에서 광고하는 것이니 아주 근거없는 것은 아닐 것이라고 판단한다.

   물론, 광고에서 과학적 단서의 제시는 소비자에게 상품에 대한 이해를 돕고 판단의 근거를 제공하는 긍정적 기능이 있다. 그러나 그 중에는 과학적으로 충분히 확인되지 않았거나 심지어 전혀 과학적 근거가 없는 것들도 있는 모양이다. 더 이상 과학과 언론의 권위에 편승해 물건만 팔면 된다고 생각하는 광고주는 없기를 바란다.

   그나마 광고는 그 의도를 짐작하기에 소비자들도 나름대로 경계하고 주의한다. 그러나, 텔레비전의 프로그램이나 신문의 기사에 접하는 순간, 그 경계심은 사라지고 권위에 한층 무게가 실린다. 시청자와 독자들은 의심의 여지없이 만고불변의 진리로 받아들이게 된다. 동시에 수많은 사람들에게 전달되기 때문에 파급력도 크고 돌이키기도 어렵다. 제작자들이 더욱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이유다.

   최근 가공식품을 다룬 한 방송사의 정보 오락프로그램이 화제다. 우리가 흔히 먹는 가공식품에 유해할 수 있는 다양한 ‘화학’첨가물들이 들어간다는 것을 소개하는 내용이다. 관심을 갖고 프로그램을 찾아보고는 깜짝 놀랐다. 과학적 정보 이전에 스릴러를 연상케 하는 음향효과와 나레이터의 긴박한 목소리, 출연자들의 놀라는 탄성과 표정이 분위기를 압도한다. 오래 살고 건강하기 위해서는 모든 식품첨가제를 거부하고 과거로 돌아가야 할 것 같다. 그 내용이 사실이라면, 이제까지 가공식품의 생산과 유통의 기준을 만들고 점검했던 공무원들과 전문가들은 모두 책임을 지고 물러나야 한다.

   일상적으로 먹는 가공식품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를 제공하는 것은 중요하고도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이처럼 비과학적이거나 일방적인 주장, 선정적이고 과장된 표현에 의존해서는 안 된다. 단기적으로 시청률을 끌어올릴 수는 있을지 모르나, 더 큰 사회적 비용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언론 스스로의 권위를 내던지는 것이다. [끝]

by 전망좋은방 | 2009/03/13 09:50 | <과학과기술> | 트랙백 | 덧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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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새벽안개 at 2009/03/13 11:54
그거 보면서 저도 음향효과에 경악했습니다. 이런 의견도 있다고 찬반 양측의 의견을 조심스럽게 소개해야 할것 같은데....
Commented by sc0314 at 2009/03/13 16:56
새벽안개님, 코멘트 감사합니다.^^
Commented by daewonyoon at 2009/03/14 06:01
하고 싶던 말이었습니다.

꼭 스펀지 말고, 우리 사회의 과학으로 치장된 미신들에 대해 이야기 할 것으로 기대했는데, 살짝 아쉽네요.
Commented by 박성철 at 2009/03/14 10:37
코멘트 고맙습니다. 다음에는 말씀하신 부분도 다루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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