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03월 13일
<2009년 3월> 과학잡지의 변화와 가능성
중고생 시절이던 80년대 중반, 월간지를 배송하는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다. 총판에서 책을 받아서 정기구독자들의 집이나 직장으로 배달해 주는 일이었다. 두꺼운 월간지 20여 권을 어깨에 메고 손에 들고 나르는 일은 만만치 않은 육체노동이었다. 한번은 김포공항의 사무실 지역을 배정받았다. 처음 가보는 공항에서 곳곳에 숨어있는 사무실을 찾느라 몇 번씩 같은 길을 헤매야 했다.
배달을 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잡지를 구독하고 있다는 데 놀랐다. 신문사에서 발행하는 <신동아>니, <월간조선>이니 하는 월간지들이었다. 제목으로 봐선 정치에 관한 기사들로 채워진 것 같았다. 항공사 직원들이 (대부분 간부급 이상의 직원들 같았다) 왜 이 재미없어 보이는 월간지를 그것도 ‘정기구독’까지 하고 있는지 이상했지만, 오래 고민하진 않았다. 한 권을 배달할 때마다 180원을 벌게 된다는 사실이 내겐 더 중요했다.
당시가 월간지들의 전성기였던 것 같다. 아버지와 학교 선생님의 책상에서도 쉽게 눈에 띄던 책들이 이제는 서점에서조차 직원의 도움 없이는 찾기 어렵게 되었으니 말이다. 잊혀져가는 그 두꺼운 월간지의 기억을 되살려준 건 ‘경제대통령 미네르바’였다. 최근한 월간지가 미네르바의 인터뷰 기사를 실었다고 해서 화제가 되었기 때문이다. ‘아직까지 살아 있었구나’.
잡지는 한물간 매체다. 무엇보다 너무 느리다. 월간지는 한 달 간격으로 발행된다. 나는 한 달 전의 일들을 거의 기억하지 못한다. 편집자들은 지워져가는 한 달 전의 기억을 붙들어 매거나, 한 달 뒤의 관심을 예견할 수 있어야 한다. 보통사람으로서는 벅찬 일이다. 둘째, 무겁고 거추장스럽다. 500쪽이 넘는 두꺼운 종이뭉치는 몸과 근육에 부담스럽고, 20쪽이 넘는 기사들은 정신과 마음에 부담스럽다. 셋째, 빽빽한 활자와 몇 장의 사진. 동영상 없이 영상세대의 눈길을 잡아두기는 어렵다.
월간지가 내리막길을 시작할 무렵인 1989년 <시사저널>이 창간된다. 물론, 우리나라 주간지의 역사는 이보다 훨씬 깊다. 1968년 창간하여 1991년까지 발행된 <선데이서울>은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컬러사진과 기사로 청장년 남성들의 시선을 끌었다. 그러나 오락연예에 치중했다는 점에서 저널리즘 기능에 초점을 맞춘 주간지로는 <시사저널>이 효시일 것이다.
초창기 <시사저널>은 취재에 심각한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카르텔로 운영되는 출입기자단에 의해 국회와 정부기관 등 주요 취재처에 대한 접근을 차단당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박권상, 안병찬 씨 등이 참여한 <시사저널>은 이에 굴하지 않고 저널리즘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해나갔다. 뒤를 이어 <한겨레21>을 비롯한 시사주간지가 잇달아 창간되면서 붐을 일으켰다. 하지만 상당수는 폐간되고 현재까지 남아있는 잡지들도 광고와 판매부수의 감소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듯 있다.
주간지의 생애인 일주일의 발행주기는 참 어렵고도 애매하다. 일간신문처럼 사건현장에서 수집한 사실만으로 기사를 쓸 수는 없다. 더 심층적이고 깊이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매주 발행해야 한다니. 난 지금도 주간지 기자들을 보면 존경스럽다. 다다음호를 기획하고, 다음호를 취재하면서, 이번호를 마감하고 있을 그들이기 때문이다.
잡지는 미디어로서 인터넷은 물론이고 신문이나 방송에 비해 많은 한계를 가진다. 인쇄매체로서의 한계이기도 하고, 시간의 장벽에 의한 한계이기도 하다. 그러나 잡지의 이러한 제한성이 과학지식을 전달하는 데는 잇점이 되기도 한다. 신문과 방송이 과학을 소재로 다루는 데 적잖은 어려움을 겪는다는 점에서 거꾸로 가늠해 볼 수 있기도 하다.
기존 미디어들은 속보성, 즉 빠른 시간 내에 정보를 전달하는 데 주안점을 둔다. 그런 점에서 인터넷의 등장으로 신문은 이미 유력한 매체로서의 지위를 잃고 있다. 이에 비해, 과학지식은 신속한 전달이 어렵거나 불가능하다. 기사를 작성하고 리포트를 해야 하는 기자가 준비하고 이해하는 데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를 무시하고 빠른 전달을 강조하다 보면, 엉뚱한 사람을 전문가로 취재한다거나, 용어나 수치, 단위 등을 잘못 사용하거나, 중요한 실험과정이나 결과를 누락하는 등의 오류가 발생하기 쉽다. 상대적으로 잡지는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제작되기 때문에 이러한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적다는 것이다.
또한, 잡지는 특정 분야에 관심을 가진 제한된 독자를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오히려 더 충실하게 정보를 전달할 수 있다. 과학잡지를 집어든다는 것은 어느 정도 과학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 사람은 그 내용에 대해 주목을 유지할 가능성이 크다. 더 많은 사람들이 신문과 방송에 접하게 되겠지만, 이들은 대부분 스치듯 지나가는 독자들이다.
나는 이런 점에서 잡지가 과학지식을 사회적으로 확산시키는 데 매우 유효할 뿐 아니라, 앞으로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지금까지 많은 과학잡지가 발행되었지만, 중도에 폐간되거나 간신히 명맥만을 유지하고 있다. 이것은 개별 잡지 자체의 한계도 있었을 것이고, 우리 사회의 경제적 문화적 조건이 따르지 못한 결과이기도 할 것이다. 고등교육의 정도, 경제적 풍요와 여가시간 같은 것들 말이다.
그런 점에서 최근 우리나라의 과학잡지를 분석한 연구가 발표된 것은 반갑다. 우리나라 과학잡지의 내용을 세밀하게 분석한 연구로는 매우 드문 성과다. 이 연구는 대표적인 과학잡지라 할 수 있는 <과학동아>와 <과학소년>의 특집기사를 분석했다. 무엇보다 눈에 띄는 것은 기존 대중매체에서 나타났던 ‘과학의 편식’을 발견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신문이나 방송에 등장하는 과학은 생명과학, 의학·건강, 환경 등 특정분야에 지나치게 쏠려있다. 그러나 잡지의 경우 물리학, 지구과학, 천문학 등 다양한 분야를 다룬 것으로 나타났다.
<과학동아>와 <과학소년>은 출발에서부터 많이 다르다. <과학동아>가 신문사에서 일반인을 대상으로 출발한 반면, <과학소년>은 교육출판기업에서 초등학생을 타겟으로 창간했다. 그런 탓에 <과학동아>는 첨단기술과 생명공학 등 기술과학 분야의 기사가 더 많은 반면, <과학소년>은 지구과학, 천문학, 동물학 등 순수과학 분야의 기사비중이 더 많다.
흥미로운 것은 <과학동아>의 독자층이 성인에서부터 시작해서 대학생, 고등학생으로 확대되어 온 반면, <과학소년>은 초등학생으로부터 중학생으로 확대되고 있다는 점이다. 성인 애독자가 동생과 자녀들에게 추천했을 것이고, 초등학생 독자가 커가면서 계속 독자층을 확대시켰을 것이다. 물론, 독자층과 판매부수를 확대시키려는 편집진과 경영진의 노력이 더해진 결과일 것이다.
독자층의 확대를 유도하고 다양한 독자들을 포괄하기 위해, 잡지의 내용과 구성이 어떻게 변화하였는지를 면밀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특히, 필자가 어떤 사람들로 구성되었으며, 어떻게 변해왔는지를 분석하는 것도 필요하다. 기존 매체에 대해서도 의미있는 시사점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라디오를 한물간 매체로 여기고 있었다면, 큰 착각이다. 나는 자동차를 운전하기 시작하면서 뉴스의 대부분의 라디오로 듣는다. 바쁜 일과 중에 신문을 펴거나 텔레비전을 켤 시간을 내기 어렵기 때문이다. 어느 방송국은 매출규모가 몇 배나 큰 텔레비전을 제치고 순수익의 절반을 라디오에서 벌어들인다고 한다.
잡지가 과학지식을 전달하는 데 가장 효과적인 매체임은 논리적으로 맞다. 그것을 현실로 만드는 것은 사람의 몫이다. 2004년 실시된 조사에서 과학기술지식의 습득경로로 14%의 미국인이 잡지를 꼽았다. 우리나라는 2.4%였다. 그나마 2006년에는 1.5%로 낮아졌다.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가? [끝]
# by | 2009/03/13 09:51 | <과학과기술> | 트랙백 | 덧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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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경우 실용과학 잡지는 대중적으로 많이 읽히는 편입니다. 일반 슈퍼에서도 흔히 볼 수 있고, 저도 가끔 꺼내서 구경하는데 쉽게 씌여져 있어서 잘 읽히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