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06월 20일
<2009년 7월> 울지말고 일어나 과학을 믿으세요
나이를 먹어가면서 기억력이 문제다. 잠깐 전에 들은 내용인데도 도무지 떠오르지가 않는다. 아이들의 우스갯소리에 한바탕 웃고 나면, ‘잘 기억해 두었다가 써먹어야지’ 하고 마음먹지만 그 때 뿐이다. 하루만 지나면 아무리 머리를 쥐어짜도 도통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행스러운 것은 이것이 나만의 문제도, 나이의 문제도 아니라는 것이다. 가만히 앉아서 수동적으로 듣기만 한 이야기는 그대로 흘러나가기 쉽다. 단지 말로만 전달된 이야기를 24시간이 지나서까지 기억할 확률은 10% 미만이라는 연구결과도 있다.
그래서 유능한 강사들은 혼자 강의하기보다 청중들에게 지속적으로 질문을 던지며 대화를 유도한다. 한 개인을 지목하여 질문을 던지기도 한다. 질문에 답을 잘 하건 못하건 당사자는 긴장하게 되고 주의를 집중하게 된다. 당연히 강의를 가만히 듣고 있는 것보다는 같이 질문에 대답하고 메모를 했을 때 훨씬 기억에 오래 남는다.
어떤 정보를 이해하고 기억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직접 경험하고 생활에서 활용하는 것이다. 시골에서 나고 자라신 우리 어머니는 고향을 떠난지 오십년이 되었는데도 그 많은 나무와 풀들을 구분하고 이름을 외신다. 우리가 아무리 식물도감을 꼼꼼히 들여다본다고 해도 쉽지 않은 노릇일 텐데 말이다. 생활 속에서 경험을 통해 체득한 지식의 강한 생명력을 엿보게 된다.
그러고 보면, 과학문화, 과학대중화, 과학의 국민이해와 같은 활동과 정책들이 어디에 초점을 맞춰야 하는지가 명확해진다. 단편적 과학지식을 아무리 강조하고 전달하려고 한들 그 순간만 지나면 잊혀지고 말 가능성이 높다. 그것보다는 개인과 사회가 과학지식을 얼마나 유용하게 이용하고 있는지를 넌지시 보여주는 것이 더 효과적일 지도 모른다.
아무리 과학책을 많이 읽으라고 강조하고, 엄청난 돈을 들여 과학관을 짓고 우주선을 쏘아 올려도 그것만으로 과학문화가 번창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 활동은 도리어 과학은 나의 일상생활과는 분리된 다른 것으로 오해하게 만들 수도 있다. 내 주변의 작은 문제 하나도 과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분석적이고 체계적으로 접근했을 때, 해결될 수 있음을 깨닫게 해주는 것이 필요하다.
내 직장과 조직이, 우리 사회가 과학적 근거와 메커니즘에 의해 움직인다면, 누구도 과학을 외면할 수 없을 것이다. 다른 어떤 것보다도 ‘과학’이 나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가장 강력한 근거가 된다면 모두들 과학을 공부하려고 애쓸 것이다. 과학에 의해 작동되는 사회를 보여주는 것은 수 백 억 원의 과학문화 예산 이상의 효과일 것이다.
지난 4월, 식품의약품안전청은 일부 의약품에 석면 탈크 성분이 함유되었다며 판매 및 유통금지 처분을 내렸다. 무려 120개 제약사의 1,122개 의약품이 그 대상이었다. 이 같은 결정을 하게 된 것은 ‘중앙약사심의위원회’의 논의에 크게 의지했음을 밝히고 있다(식약청 보도자료). 그런데 이 위원회의 논의과정이 우리 사회에서 ‘과학의 지위’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 같아 실망스럽다.
이 위원회는 의사, 약대와 간호대 교수, 대학병원 약제부장 등 의약학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이는 자리다. 당연히 ‘과학적’ 근거에 바탕을 둔 ‘과학적’ 논의가 진행됐을 것으로 짐작케 한다. 그러나 회의내용을 보도한 한 기사(중앙일보 4월 16일자)에 따르면 그렇지 않았던 것 같다.
실제 회의에서 ‘석면 오염 우려 의약품이 인체에 유해하다’고 말한 사람은 회의에 참석한 11명의 위원 가운데 1명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나머지 대다수 위원들은 과학적으로 볼 때 위험하다는 근거를 찾기 어렵다는 데 동의했다고 한다.
그러나, 위원회는 천 여 종이 넘는 의약품의 판매금지를 최종결론으로 내렸다. 이미 언론의 보도로 민감해진 국민정서를 고려할 필요가 있으며, 베이비파우더와 화장품을 이미 판매금지한 이상 의약품을 회수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감성적으로 대처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견과 회수조치에 들어가면 엄청난 혼란이 예상된다는 주장이 있었지만 결국 표결에 부쳐졌고 근소한 차이로 판매금지 결정이 내려진 것이다. 의사와 약대 교수 같은 과학자의 회의가 아니라 마치 정치인들의 당정회의인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킨다.
‘정치적’이라는 것이 꼭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하지만, 의약품에 대한 위해성을 검토하고 판단하는 중앙약사심의위원회는 어느 자리보다도 과학에 근거한 판단을 해야 하는 곳이다. 정치인이나 관료들이 ‘국민정서’를 고려해서 판단할 때, 과학적으로 볼 때는 그렇지 않다고 꼿꼿하게 소수의견을 고수해야 하는 자리다.
그런 역할을 기대하고 정치인이나 관료를 배제하고 의약학계의 전문가들을 자문위원으로 모신 것 아닌가. 이렇게 출발이 어긋나다 보니 이리저리 궁색하고 아귀가 맞지 않는다. 위해가능성이 있다면 판매금지 조치를 취하고 관련 제약업체 처벌해야 할 것이고, 위해가능성이 현저히 낮다면 국민들이 안심할 수 있도록 설명하고 설득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식약청은 석면 약의 판매금지 및 회수를 명령하면서도 그 약을 제조 판매한 제약업체들을 처벌하기는커녕 ‘적극 협조해 달라고 당부’(식약청 보도자료)하고 있다. 위험하지 않다면 왜 판매금지를 하는 것이며, 위험하다면 당연히 제약업체를 처벌해야 하는 것 아닌가?
코미디가 아닐 수 없다. 국민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무작정 제약업체들 보고 손실을 감수하라는 것이다. 엄격히 말하자면, 영업방해에 행정권을 악용한 재산권 침해는 아닌지 모르겠다. 급기야 제약업체들이 반발하고 나섰고 일부 품목들에 대해서는 판매금지에서 제외하는 등 혼란을 부채질했다.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혼란과 불필요한 사회적 비용이 참으로 안타깝다. 제약업체들의 이미지 추락과 영업손실도 당사자들 입장에서는 분통터지는 노릇일 것이다. 그러나 그보다 몇 배 더 안타깝고 아쉬운 것이 있다. 과학자들이 과학을 스스로 외면하는 것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고 확인했다는 것이다.
과학이 외면받고 과학이 통하지 않는 사회에서 무슨 낯으로 과학문화 확산을 과학에 대한 국민이해를 이야기해야 할지 난감할 뿐이다. 정작 과학은 학교에서 시험 볼 때 이외에는 필요 없는 것이 되어 버린 것이다.
그러고 보면, 아래로부터의 과학문화 확산은 너무도 뻔한 한계를 드러낼 수밖에 없다. 학생들에게, 일반국민들에게 과학 책을 읽고, 과학 콘텐츠를 보고, 문제에 대한 과학적 접근을 훈련하라고 한들 그들에게는 일시적 이벤트에 지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가 작동하고 움직이는 데 과학이 전혀 관여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확인하는 순간부터 말이다.
과학문화 확산은 위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정치인들, 기업간부들, 행정관료들이 과학을 이해하고 과학적 접근과 사고를 한다면 자연스럽게 과학문화 확산은 이루어질 것이다. 과학문화 정책과 활동도 학생과 일반시민 이상으로 사회지도층에 주목해야 한다. 실무자가 전문가, 과학자와 함께 심혈을 기울여 작성한 기획안이 최고결정권자의 한 마디에 뒤집어지는 조직에서 과학문화가 성숙될 리 없다.
이미 2004년 연구보고서에서 석면 탈크의 위험성이 지적되었음에도 식약청이 적절한 대처를 못한 것은 참으로 아쉽다. 그러나 그보다 더 아쉬운 것은 뒤늦은 대응마저 과학이 근거하지 못하고 정치적 감성에 의존하려 했다는 점이다.
살다보면 ‘정치적’인 것도 필요하고 ‘감성’도 필요하다. 그러나 식약청이 그래서는 안 된다. 과학에 근거하고 과학을 지켜야 한다. 그래야 할 말도 있고 명분도 선다. 더구나 식품 의약품 분야의 박사만도 300명이 넘는 과학자들이 모여 있는 곳이 아닌가. 과학의 논리와 힘으로 작동하는 사회를 보여주는 것, 그것이 과학문화 운동의 시작이요, 완성인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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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y | 2009/06/20 00:51 | <과학과기술> | 트랙백 | 덧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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