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8월> 투시안경 광고하는 언론

지난 6월 언론의 ‘투시안경’ 보도는 단연 화제거리였다. 지나가는 사람의 옷을 투시해서 알몸을 볼 수 있는 특수안경이 판매되고 있다는 것이다. 마음 놓고 다른 사람의 나체를 ‘감상’할 수 있다니. 뭇 남성들에게 솔깃한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정말 보일까’ 하는 의구심에서부터 ‘100% 환불을 보장한다니 아주 거짓말은 아닐’거라는 둥 다양한 반응이다.

이미 중국에서 히트를 쳤고 국내에서도 수 천 명이 샀다고도 한다. 특수 필터를 이용한다고 하고, 가시광선이니 적외선이니 하는 작동원리도 그럴 듯하다. 면제품보다는 수영복 같은 나일론 소재의 제품이 투시가 잘 된다는 설명은 신뢰를 더해준다. 구체적인 한계까지 밝히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한 달도 못가 ‘투신안경’은 사기로 밝혀졌다. 전과 14범인 정모 씨가 중국에 거주하는 다른 사람과 짜고 인터넷 사이트를 개설한 뒤 돈만 입금 받아 가로챘다는 것이다. 물론, 투시안경의 광고사진은 컴퓨터로 조작한 것이고, 9천여 개의 아이디를 도용해 인터넷 카페 등에 광고하고 가짜 사용 후기를 올리기도 했다고 한다.

그들은 투시안경을 정말인 것처럼 믿게 하기 위해 과학을 적극적으로 이용했다. 옷에서 반사된 가시광선은 차단하고 피부에서 반사된 적외선을 인식하도록 하는 원리로 제작되었다고 그럴 듯하게 설명했다. 물론, 과학적으로 투시안경이 엉터리임은 명백하다(<문화일보> 6월 18일자 [이덕환의 과학세상] 참조). 인터넷 홈페이지에 올라와 있는 사진만 봐도 배경 속의 일부 사람은 투시되지 않는다. 조잡한 합성사진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이 광고에 속아 돈을 보냈다. 경찰 수사에서 13명이 돈을 송금한 것으로 드러났고, 실제로는 이 어처구니없는 사기에 넘어간 사람이 1백여 명이 넘는다고도 한다. 다른 사람의 나체를 보겠다는 일념(?) 하나로 수 십 만원을 주저 없이 송금했다는 사실이 놀랍다. 그들의 어리석음이야 본인의 문제로 치면 그만이지만, 언론의 보도행태는 자못 심각하다.

많은 사람들은 언론보도를 통해서 투시안경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그런데 초기의 투시안경 보도는 흡사 신제품 홍보기사를 연상케 한다. 중국산 투시안경이 인터넷을 통해 판매되고 있다는 단순 사실 중심으로 기술하고 있다. 일부 언론은 그 내용이 더욱 구체적이다. 선글라스형과 안경형, 뿔테형이 있고 가격은 각각 18만원에서 25만원이며 판매되고 있다고 소개한다. ‘투시율 100%, 불만족시 즉시 환불!’이라고 쓰인 판매 사이트의 광고문안까지 친절하게 안내하고 있다.

한 지상파방송은 “화가 난다. 법적 제재가 필요한 일이다”, “앞으로 안경을 쓴 사람이 거리에서 쳐다본다면 즉각 피할 것이다”는 20~30대 여성들의 반응을 소개했다. 아마도 실제 투시가 가능할지 모르는 일말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는 것인지 모르겠다. 한 인터넷 매체는 아예 기사 제목을 ‘中 투시안경 국내 상륙에 여성들 뿔났다 “이런 안경 쓴 남자 피할 것”’으로 붙였다. 투시안경의 효능을 암시하는 듯한 내용이다. 그러면서도 기사의 말미에는 사기일 가능성이 있다는 전문가의 코멘트 한 마디를 덧붙이는 것을 잊지 않았다.

경찰의 수사가 진행되고 전과14범의 사기범이 붙잡히고 나자, 언론보도는 범인 검거와 범죄 내용으로 급하게 시선을 돌린다. 중국의 공범과 짜고 사이트를 개설해 돈을 송금 받아 가로챘다는 것이다. 또, 여러 개의 아이디를 도용해 가짜 사용 후기도 작성해서 올렸다고 한다. “투시안경은 성적 호기심을 자극하고 관음증을 이용한 사기로 드러났다” 경찰 관계자의 말도 덧붙였다.

투시안경에 대한 초기의 언론보도나 범인 검거에 대한 언론보도는 모두 그 때 그 때의 사실 전달에 충실한 보도다. 투시안경을 판매한다는 인터넷 사이트가 등장하자 그에 대해 상세하게 보도했고, 사기범이 검거되자 사건에 대해 왜곡이나 과장 없이 범죄 내용 그대로를 보도했다. 그러나, 사실에 입각한 보도를 하고 의도적인 조작을 하지 않았다고 해서 언론으로서의 사회적 책임을 다한 것일까?

그러기에는 왠지 아쉬움이 남는다. 적잖은 사람들은 언론의 보도로 ‘투시안경’을 처음으로 알게 됐다. 초기의 언론보도는 투시안경을 소개하고 호기심을 자극하는 역할을 한 것이다. 처음부터 언론이 투시안경이 현재의 과학기술력으로 불가능하며 따라서 사기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분명하게 지적했다면, 피해자를 크게 줄일 수 있었을 것이다.

사기범이 잡히고 나자, 언론들은 투시안경이 엉터리였다고, 가짜 사기극이었다고 뒷북을 쳤다. 직접 투시안경을 구해서 검증을 한다고 법석이다. 처음부터 투시안경의 ‘소문’만 전할 것이 아니라 명확하게 투시안경의 실체를 전달했어야 했다.

언론이 객관적 사실의 전달에 충실해야 하는지, 사실에 대한 해설과 비평에 초점을 맞춰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언론학자들 사이에도 다양한 견해가 있다. 사실을 가감 없이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언론의 주된 역할이어야 하는 주장이 있는가 하면, 사건에 대한 분석을 거쳐 적극적으로 의견과 주장을 전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정보화 시대에 사실에 대한 정보는 너무나 많다. 오히려 과도한 정보는 처리비용만 증가시키는 ‘쓰레기’에 가깝다. 그 정보들 가운데 의미 있고 중요한 것들을 가려주고 골라주는 것이 언론의 역할일 것이다. 단순 사실의 전달만을 위해서라면 굳이 ‘언론’이 필요하지 않다.

또한, 이번 투시안경 사례는 과학기술과 관련한 언론의 대응력이 낮은 수준에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유력 정치인이나 재벌 총수의 말 한마디는 ‘본능적으로’ 순식간에 분석된다. 그러나 기초적 물리학 지식이면 충분한 투시안경 소문은 좀처럼 분석되지 않는다. 고스란히 전달될 뿐이다. 물론, 적잖은 기자들은 ‘투시안경’을 소식을 듣고 사실인지 직접 확인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투시안경을 당장 구할 수도 없었고, 원리의 타당성을 확인해 줄 과학자를 찾기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90년대 후반 이후 편집국에서 ‘과학부’를 깨끗이 없애버린 데 대한 당연한 업보다. 메이저 신문조차 ‘진짜로 투시가 가능한 지 진위 여부를 둘러싼 논란이 팽팽하다’는 기사를 거리낌 없이 올린다. 그나마 앞서 예를 든 이공계 대학교수의 칼럼이 경찰 발표 이전의 기사로는 거의 유일하게 투시안경의 허구를 분명하게 지적하고 있다.

과학기술의 시대에 발생하는 크고 작은 문제들이 과학기술과 얽혀있는 것은 당연하다. 이런 상황에 대처가 가능하도록 인력을 늘리고 조직을 갖춰야 한다. 그것이 신문과 언론이 사는 길이고 신뢰를 회복하는 길이다. [끝]

by 전망좋은방 | 2009/07/15 01:33 | <과학과기술>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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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새벽안개 at 2009/07/15 10:27
언론사에 사실판단 능력이 아예 없다는 말씀이군요. OTL...
Commented by daewonyoon at 2009/08/15 04:27
안녕하세요. 친분도 없는데 염치없이 부탁드립니다. 블로거 중에 친구가 없어서, 구독하는 블로거들 중에 자기가 할 말이 있겠다하는 블로거를 찾다가 전망좋은방님이 생각나서 부탁해 봅니다. http://daewonyoon.egloos.com/5081326 의 글 한번 읽어 보시고, 주제에 대해 쓰실 게 있으시면 포스팅 부탁드립니다. 이 블로그 성격과 맞지는 않은데, 혹시 개인 블로그가 있다면 그쪽에 써 주셔도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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