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7월> 기자와 PD, 동종업계의 전혀 다른 사람들 <재미있는 미디어 이야기>

필자는 대학에서 <과학커뮤니케이션>이라는 과목을 강의한다. 이 강의는 신문방송학과 뿐 아니라 다양한 전공의 학생들이 수강한다. 이공계 학생들도 많이 찾아와서, 때로는 수강생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 과목은 기말시험만으로 평가하지 않고 반드시 학기 중에 중간시험을 치른다는 내 나름의 원칙을 가지고 있다. 이공계 학생들에게 답안지 작성을 훈련시키기 위해서다.

인문사회계와 이공계의 시험답안 작성방법은 큰 차이가 있다. 정확한 정답을 간단명료하게 제시해야 하는 것이 이공계의 답안작성 요령이라면, 인문사회계는 ‘정답’보다는 논리적이고 설득력 있는 주장의 전개에 초점을 맞춘다. 이를 잘 모르거나 답안지 작성에 익숙치 않은 이공계 학생들이 종종 평가에서 상대적 불이익을 받곤 한다.

인문사회계 학생이 답지를 2∼3장 채워가는 동안, 표 하나를 그려 놓고 자신만만해 하는 건 여지없이 이공계 학생이다. 성적표를 받고 나서도, 새로운(?) 답안 작성법을 인정할 수 없다며 끝까지 저항하는 이공계 학생도 드물지 않다. 똑같이 고등학교를 나온 학생들인데도 단지 2∼3년의 대학교육으로 학생들의 표현양식과 사고방식까지 다르게 되는 것이다.

학생들만 그런 것이 아니다. 기자와 PD가 그렇다. 모두 대학의 언론사 고시반에서 같이 영어공부하고 상식공부해서 들어간 사람들이다. 그런데 다르다. 달라도 많이 다르다. 같은 방송국에 근무하면서도 서로 대면할 기회조차 많지 않다. 기자는 보도국(본부)에 소속되어 있는 반면, PD는 제작국(본부)에서 일하기 때문이다. 일단 보도국과 제작국으로 배치가 되고 나면, 각자의 길을 가게 된다.

기자와 PD의 차이를 단적으로 설명하는 예시가 있다. 기자와 PD에게 어떤 사건에 대해 3분짜리 리포팅을 하도록 요청했다. 기자는 먼저 기사를 작성하고는 그 기사에 맞춰 촬영해 온 동영상을 편집한다는 것이다. 이에 반해 PD는 먼저 동영상을 편집하고 거기에 맞춰 스크립트를 작성한다는 것이다.

지상파 방송의 시사보도 프로그램 중에는 기자가 만든 프로그램이 있는가 하면, PD가 만든 프로그램도 있다. 예컨대, MBC의 <PD수첩>은 제목 그대로 제작국 소속의 PD가 만든 프로그램이고, <시사매거진 2580>은 보도국 소속의 기자들이 만든 프로그램이다. 눈썰미 있는 독자들은 두 프로그램의 구성이나 형식의 차이를 알아챌 수 있을 것이다. 예컨대, PD가 제작하는 프로그램은 하나의 아이템으로 구성되는 데 비해, 기자가 제작한 프로그램은 상대적으로 호흡이 짧은 여러 아이템으로 구성된다.

기자들은 1999년 영롱이의 탄생에서부터 황우석 박사와 연구팀에 대한 많은 기사들을 취재하고 보도해왔다. 그러나, 정작 연구결과의 인위적 조작을 밝혀내고 황우석 사태를 촉발한 것은 과학기자가 아닌 과학과 거리가 먼 PD에 의해서였다. 경영학을 전공한 그는 취재 초기 어려운 용어와 논문들과 씨름하느라 큰 고생을 했다고 한다.

PD가 기자보다 취재능력이 뛰어나다거나 이공계 전공여부가 중요하지 않다고 이야기 하려는 것이 아니다. PD와 기자는 사건을 바라보는 시각과 취재방식에서 차이가 있다는 점을 설명하고자 한다. 황우석 사태를 취재한 <PD수첩>의 PD는 6개월 이상 ‘황우석’이라는 한 아이템에 집중하여 취재할 수 있었다. 연구원 한 명을 인터뷰하기 위한 미국 출장도 허락되었다. 뉴스거리는 쏟아지고 매일매일 기사를 마감해야 하는 기자가 한 아이템만을 붙잡고 늘어지기는 어렵다. 특별한 기획취재가 아닌 이상 해외출장의 시간이나 비용을 확보하는 것은 쉽지 않다.

취재과정과 방법도 다르다. 기자의 취재는 출입처를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기자의 입장에서는 만나기조차 어려운 황우석 박사를 인터뷰하기 위해 출입처를 포함한 주변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만드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반면, 출입처 시스템에서 자유로운 PD는 취재 초기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대신 당사자들과 거리를 둔 객관화된 관점에서 접근이 가능할 것이다.

정부와 국민 모두 황우석 박사를 적극 지원, 지지하는 상황에서 이를 정면으로 거스르는 보도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어쨌든 PD들이 제작하는 시사프로그램의 제작환경, 기존 관행으로부터 자유로운 취재과정, PD의 새로운 시각과 관점 등이 황우석 사태 보도를 가능하게 한 조건이었음은 분명하다.

2000년 MBC의 <피자의 아침>(피디와 기자라는 뜻)은 프로그램 제작에서 구체적 협업을 통해 기자와 PD 각각의 장점을 살려보려는 시도였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 신선한 동거는 오래가지 못했다. 출신배경이 다른 사람들이 함께한다는 것이 말처럼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학계에서 다양한 융합연구가 시도되고 있지만, 실제 성과를 내는 연구는 극소수인 것처럼 말이다.

실제로 기자와 PD는 일하는 방식에서부터 큰 차이가 있다. 기자는 혼자 일한다. 정보를 입수하고, 취재원을 인터뷰하고, 기사를 쓰는 과정에서 혼자 생각하고 혼자 판단하고 혼자 행동한다. 물론, 데스크의 지시를 받고 팀 단위로 공동취재가 이루어지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취재와 기사작성은 결국 기자 개인의 몫이다.

반면, PD의 프로그램 제작은 철저히 공동작업으로 이루어진다. KBS2의 <1박2일>을 보면 쉽게 이해가 갈 것이다. 야외촬영에 거의 백 여명 가까운 인원이 참여한다. 출연진은 물론 카메라 감독과 같은 전문 스탭, 작가, 매니저, 운전기사, 잡일을 하는 일용직원, 심지어 밥차 아주머니까지. 이 다양하고 많은 사람들을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게 하는 것이 PD다.

사건을 대하는 시각에서도 차이가 있다. 기자는 팩트를 수집하고 이를 논리적으로 연결함으로써 시청자를 이해시키는 데 주안점을 둔다. 하지만, PD는 시청자를 설득하는 데 더 비중을 둔다. 적절한 비유와 수사의 활용은 이를 위한 효과적 수단으로 여겨진다. 기자의 취재과정을 이성적 접근으로, PD는 감성적 접근으로 거칠게나마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종합편성채널의 출범은 기자와 PD의 새로운 만남을 주선하고 있다. 종편에 참여하는 네 개 채널이 모두 신문사를 대주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각 채널에는 신문사에서 방송사업 참여를 준비하던 기자들과 기존 방송사에서 옮겨 온 PD들이 자연스럽게 함께 일하게 된다. 이들의 인적 조화와 융합은 종편 채널의 안정적 시장진입에 중요한 요소가 될 것이다.

매일 카메라 앞에 서는 방송국 기자와 기사 말미에 이름 석자만 남기는 신문사 기자는 또 다르다. “신문과 방송의 차이는 축구와 야구 정도가 아니라, 축구와 레슬링 정도의 차이지요.” 신문과 방송을 모두 경험한 중견 기자의 말이다. 신문이라는 인쇄매체의 기자와 방송이라는 영상매체의 PD가 어떻게 조화를 이뤄나갈지 궁금하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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